서비스에서 신규 기능을 출시하게 되면, 유저의 어뷰징과 CS 민원의 대응 등을 위하여 관리자 페이지도 함께 만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사용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코드를 작성하는 데 여념이 없는 개발자는 관리자 페이지는 어떻게든 돌아만 가게 만들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용자가 사용하는 코드는 개발자가 개밥먹기를 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으나, 관리자 페이지는 보통 개발자는 사용하지 않고 보통 다른 부서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관리자 페이지는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사이다 하우스 규칙
- 술을 마셨다면 분쇄기나 압착기는 운전하지 마십시오.
-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양초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 술을 마셨다면 지붕에 올라가지 마십시오. 특히 밤에 조심하십시오.
- 지붕에 올라갈 때 술병을 가져가지 마십시오.
“프로젝트와 무관한 사람들이 만든 규칙을 프로젝트 팀원들이 무시하거나 우회한다.”
(중략)
사이다 하우스 규칙은 사이다 하우스에 살지 않는 (그리고 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사이다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해준 규칙이다. 대저택에 사는 올리브는 열대야에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곳이 지붕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붕에서 한 잔 하는 즐거움이 일꾼들의 일상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부적절한 규칙을 내걸었으므로 무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멀찍이서 남들에게 규칙을 정해주었으니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소리나 매한가지다.
이와 비슷하게 사이다 하우스 규칙을 정하는 조직이 간혹 있다.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규칙을 정해준다. 흔히 프로세스 개선 그룹, 표준 제정 그룹, 품질 부서 등이 업무 프로세스나 수행 방식을 명시한다. 그 외에도 팀원들이 사용할 도구를 정하거나 결과물이 따라야 할 표준을 만든다. 대개 그들은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업무 방식을 정해주는 외부인에 불과하다.
(후략)
— Demarco, Tom et al. 2008. Adrenaline Junkies and Template Zombies: Understanding Patterns of Project Behavior. 1st ed New York, NY: Dorset House. (박재호, 이해영 역, 2009.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프로젝트 군상의 86가지 행동 패턴』. 서울: 인사이트. pp.160-163)
관리자 페이지의 개발자는 업무 방식을 정해주는 외부인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관리자 페이지를 만드는 개발자는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정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개발자가 책임 의식 없이 아무렇게나 관리자 페이지를 만들면, 관리자 페이지로 업무를 진행하는 현업들의 업무의 질은 자연스레 바닥을 기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만든 서비스인데, 사용자가 만족하지 못한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리자 페이지를 만들 때에는 현업의 업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고 기획과 개발이 이루어지면 UX는 자연스레 좋아집니다. 관리자 페이지에서 무슨 UX냐 싶으시겠지만, 저는 관리자 페이지에서 UX가 전혀 고려되지 않으면 어떤 참사가이 일어나는지를 보았습니다.
- 하나의 관리자 페이지에 모든 기능이 들어가 있습니다. 30개가 넘는 기능 드랍다운 중 하나를 선택하고 저장하는 업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합니다.
- 모든 테이블의 필드가 어드민에 그대로 보여져, FHD 모니터의 1920*1080 해상도를 한참 넘어섭니다. 원하는 필드 한 개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오른쪽으로 스크롤해야 합니다.
- 상품 한 개를 올리기 위해서 70개의 필드를 오퍼레이터가 채워 넣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비효율적 작업에 숙달되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채워넣습니다.
- 관리자 페이지에 필요한 기능이 없으니, 시스템을 엑셀이나 스프레드시트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중요한 데이터들이 여러 곳에 분산되고 업무 인수인계도 어려워집니다.
- 페이지를 로딩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개발자에게 말해 봤자 잘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으니 그냥 참고 씁니다.
한 마디로, 조직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휴먼 에러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개발자가 조금만 UX를 생각해서 만들면, 전체적인 조직의 시간이 절약되고 더 생산적인 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주어진 기능의 요구사항만 만족하는 시스템이 아닌, 진정으로 현업의 업무가 편리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관리자 페이지를 만드는 부서와 관리자 페이지를 사용하는 부서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해도 관리자 페이지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관리자 페이지를 사용하는 부서에 가서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지켜보세요. 개발자가 상상하지 못한,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에 폭풍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겁니다. 가능하면 관리자 페이지를 직접 사용해 보세요. 개밥 먹기를 하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눈에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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